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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6년을 보고와서 적는 감상평 (간만의 포스팅 ㅠㅠ)

왜 26년인가?

왜 오래간만에 한다는 포스팅의 시작이 26년인가를 소제목으로 적고 싶었지만,
집약해서 왜 26년인가로 작성하였다.

내일 중요한 상담이 있어서, 자야하기에 오늘 포스팅은 시간 관계로 진심보다는 가볍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적인 소식은 Twitter나 Facebook 등의 SNS를 통해서 아주 간간히 올리지만 포스팅이 뜸한 이유는
 웹페이지에 올리는 모든 포스팅은 게시물 하나당 평균 3시간은 걸리기 때문이지만, 오늘은 시간이 없네요.)



처음 26년.이란 강풀의 만화를 접하게 된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만화로 접한 26년을 보며 분노와 감동을 받았다.

분노

사람마다 분노하는 사연과 정도는 다르겠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내가 분노하는 사연은 몇가지 없었다.

약자를 괴롭히는 경우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경우
억울한 처우를 받는 경우
죄인이 처벌받지 않는 경우


이 4가지 경우 외에는 크게 분노해본 기억이 없다.
나누다 보니 4가지로 분류되었지만, 사실 한가지 일지도 모르는 경우에만 분노를 느낀다.

26년은 그 소재자체가 실제로 내가 태어난 이후에 벌어진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한 픽션이다.

나의 첫번째 분노는 여기에 기인한다.

「 픽션 」



굳이 사람을 죽이라는 말은 아니다.
왜 감히 살인을 시도해볼 수도 없는 철통 보안 속에 '그사람'이 살고 있어야 하는가에 분노한다.

이유와 타당성은 뒤로하더라도, 국민 대통합이란 명목하에 당시 현직 대통령이 용서와 사면을 했다.
사과하거나 반성한 사람은 없는데, 용서한 사람은 있다.
나는 원수까지 사랑하기에는 아직 모자란 사람이다.


「 말도 안되는 현실 」

2번째는 현실에 대한 분노이다.

원작 만화를 연재하기 전에 작가는 주변의 엄청난 만류를 뿌리치고 게재를 결정한다.
각종 협박과 압박과 비난에 시달리면서 연재가 계속된다.
연재가 끝난 이후에도 '빨갱이'등의 얘기를 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화가 결정되었지만, 수많은 압박 덕분에 결국 영화는 엎어지고 만다.
2008년 9월. 한 벤처투자사와 투자조합을 꾸려 10억원 투자를 약속한 대기업 쪽의 상무가 “내가 잘릴 수 있어요. 제발 봐주세요”라며 투자를 돌연 철회했다. 촬영을 열흘 앞둔 시점이었다. “정부 윗선에서 투자하지 못하게 전화를 걸었다”는 둥 뒷말이 무성했다. 이 대기업이 물러서자, 미리 지급 받은 다른 투자자의 20억원과 곧 들어오려 했던 10억원 투자금도 철수했다. 원작자인 만화가 강풀씨한테서 2006년 영화 판권을 구입할 때, 주변에선 “정권이 바뀌면 혹시 제작이 무산될 수 있으니 2007년 대선 전에 개봉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출처 - 한겨례 2012.06.24 중 에서…


몇 년이 흐르고, 다시 영화화를 시도하지만 후원을 받지 못한 영화는 '두레'형태로 시작한다.
(일반인들 후원 형태의 모금을 통해서 제작 비용을 마련하는 형태)


대체 그깟 만화가가 없는 현실을 만화로 그리는데도 협박과 압박에 시달리고,
이미 유명해진 만화가의 만화를 영화로 만드려는데 대기업의 상무가 퇴직 위기에 놓이는 이 세상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이 맞단 말인가?
이번 영화화에 가장 큰 투자자인 가수 이승환씨조차 '빨갱이' 소리를 듣는 지금이 2012년의 대한민국이란 말도 안되는 현실이 나를 분노하게 했다.



「 열린 결말 」

애초에 열린 결말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지만, 그런 이유로 분노를 한 것은 아니다.

1. 현실적인 압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2. 속시원하게 한방에 보내버리는 것 보다 우리에게 답답함과 절망감을 주어서 여론을 형성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원작자의 의도는 알 수 없고, 감독의 의도도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해석은 그렇다.
(아이쿠. 영화도 열린 결말이라는 스포를 해버렸네-_-)

1번이건 2번이건 우린 분노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감동

아마도 내 감동 코드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지는 못할테지만;;;

「 동감 」

26년의 개봉소식을 듣고 무조건 개봉 당일에 보겠다고 다짐하면서 하나의 바람과 하나의 예상이 있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이슈화가 되며, 다시는 1%의 비슷한 사건이나 대처가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흥행에 실패해서 이슈도 되지 못하고, 과거가 반복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었다.


현재 예매율 1위를 달성하고 있는 것을 보면
두고 볼 일이지만, 아직은 기분좋게 내 예상이 깨지고 있다.

처참했던 내 예상과 달리 사람들은 영화에 예매로 동감을 표현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더 많이 동감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감동이 멈추지 않는다.


「 개봉 」

앞서 분노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왜 개봉에 감동했는지는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최소 1000편이상의 영화를 관람했고, 90%이상은 엔딩크레딧을 봐왔지만 역대 가장 긴 엔딩크레딧을 경험했다.
제작을 위해 모금한 이들의 이름이 모두 적혀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 자체는 내게 또다른 감동이었지만, 부끄러웠다.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빠서 깜빡했다는 핑계가 그럴 듯하겠지만, 사실은 나의 예상보다 빨리 목표금액이 완성되어서 모금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제작이나 모금 자체를 몰랐던 사람도 많았겠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기회를 놓친 사람이나 망설인 사람도 많았을텐데 모금이 완료되다니...


이 감정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능력이 한탄스럽게지만.
너무 큰 감동이었다.

아쉬움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평점은 80점밖에 줄 수 없다.

제작비의 압박이었는지, 출연진을 구하기 어려웠는지, 외압에 시달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원작에 비해서 출연자의 수가 부족했다.
원작과 조금 다른 스토리 전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설명과 친절한 안내가 아쉬웠다.
기껏해야 영화이고 이름도 실명으로 언급조차 안되었는데, 울분을 털어낼 수 있게 한 방 터뜨릴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가장 큰 아쉬움은 영화가 아니라 관람객이 주었다.

대학생이나 수능을 끝낸 정도의 여학생들로 보였다.
아직 엔딩 크레딧도 나오지 않았는데 우르르르 일어나서 나가는 모습 뒤로 어마어마한 허탈감과 작은 탄식을 내뱉게 되었다.


이미 내 추천으로 원작을 보았었고, 반드시 개봉일에 보겠다고 다짐했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집사람의 손은 계속해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닦기에 바쁘던 그 순간에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정적이 흐르고 있었는데 까르르르~ 웃더니 일어서서 나가는 그 모습.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보았지만 같은 느낌을 받을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누구에게는 매우 불편할 수도 있고, 지루하거나 재미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끝나고 까르르르 웃으며 일어날 수도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살짝 분노하며 이해할 수 없어하던 집사람에게는 허탈감에 웃을 수도 있다는 핑계로 달랬었지만...)


언젠가 위안부 여성들을 돕기 위한 선의로 위안부 컨셉의 누드집을 냈다던 이승연씨를 떠올렸던 내가 과한것이리라.

빨.갱.이

빨갱이는 지금도 존재하고, 과거에는 더 많았으며 때려 죽일놈이라고 여기는 한 분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는 1942년 05월 13일생이니 이미 칠순이 넘은 노인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지만,
북한 어딘가의 동네 유지의 4번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김일성이 집권하면서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마을 밖으로 쫓아냈던 그 해에 이남으로 피난오다가 셋째 형님과 막내 여동생을 잃었고,
피난 내려와서 직접 움막을 지어서 살고, 친구도 친척도 하나 없이 살면서 때로는 빨갱이 소리도 들었던 사람.

아버지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서울에만 살았고, 재산과 가족을 빼앗아갔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빨갱이 소리에 민감할 수 없는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난 단 한번도 빨갱이란을 부정적으로 사용해 본 일은 없었다.


이제는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의 빨갱이 소리에 나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아버지를 상대로 빨갱이 를 논하는 일은 없었다.
정부나 정치인들, 매스컴에서 만들어내는 빨갱이 와 당신들께서 증오하고 분노하는 빨갱이 가 다른 대상임을 모르는 무지한 노인들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의 상처나 아픔을 굳이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최대한 많은 부분을 이성적인 사고와 논리적인 대처를 하고자 노력하지만,
분명히 감성적으로 감정에 호소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이상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빨갱이 란 말을 통해서 선동하는 행위나 사고 방식은 이제는 물러날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들이 빨갱이 라고 만든 그 표적의 핵심인 북한에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세뇌하는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제 대선이 다가온다.

핵실험을 강행하거나,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무기를 수입하며 전투태세를 갖춘다는 보도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마 간첩을 내밀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이 포스팅을 접하는 분들은 PC,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을 사용하시고 모든 분들은 최소한 1대 이상의 휴대통화가 가능한 기기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5.18 광주항쟁이 빨갱이 들의 소행이라는 얘기는 이러한 정보통신망의 발전이 있었다면 도무지 지어낼 수 없는 허구의 사실임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굳이 전두환을 죽이지 않아도 됩니다.
현 정부나 집권 여당에 반대편에 서지 않아도 됩니다.
촛불시위에 참여하거나, 각종 데모에서 앞장 서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있었던 일은 있었던 그대로 말하고 기억하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일필휘지로 휘날리듯이 적어내려가고 있어서 감수 작업을 못하고 발행하다보니
문맥상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나 일부 오타가 섞여 있을 수도 있는 부분은 추후에 시간이 날때 수정 작업을 거치겠지만

고작 펙션 영화 개봉과 관련해서 빨갱이 소리가 나오지 않는 세상을 여러분들께서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ps.

빨갱이 소리를 만들거나 생산하는 분들과 관련 있는 분들과 친한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해도 좋으니 투표합시다.

제발 투표도 안하고 불평 불만만 늘어놓거나, 내가 뽑지 않은 사람이 당선 됐으니 책임이 없다는 소리는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